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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ESG 공시 의무화 신중해야

관리자 2023-09-20 조회수 121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ESG 공시와 관련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을 ‘IFRS 지속 가능성 공시 기준’의 첫 기준서가 지난 6월 말 확정됐다. 국제회계기준(IFRS)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출범해 논의를 시작한 지 약 1년8개월 만이다.


이번에 발표된 기준서는 우선 지속 가능성 관련 일반 요구사항에 대한 공시 기준(S1)과 기후 관련 공시 기준(S2)으로 편성돼 있다. ISSB는 앞으로도 물, 생물다양성, 폐기물 등 다양한 환경 이슈와 사회 분야에 대한 공시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재무제표와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된 정보로 비교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글로벌 ESG 공시 기준은 우리 기업들이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한 위험 및 기회를 판별·관리해가는 데에 불가결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후 관련 공시 기준만 보더라도 우리 정부와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최종 기준서에 대한 번역본도 나오지 않아 용어의 혼선이 있는 데다 IFRS 기준과 국내 제도 간 정합성 확보를 위한 세부 공시표준 마련, 부처별 제각각인 기업 관련 정보공개제도 통합·조정, 탄소배출 MRV(측정·보고·검증)시장 육성 등 공시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요구된다.


이런 마당에 지난 정부가 202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그대로 추진하는 게 현실적으로 맞는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IFRS 기준 확정 후 이를 도입하는 내용의 로드맵을 제시한 국가는 금융업 위주의 싱가포르가 유일하다. 지난 8월 17일 KSSB가 주최한 국제세미나에서 일본의 야스노부 가와니시(川西安喜) 지속가능성기준위원장은 자국의 공시 의무화 로드맵을 2025년 3월 발표할 예정이며 이후 적용시기도 신중히 정할 방침을 밝혔다. EU(유럽연합)도 역내 세부 공시표준(ESRS)을 최근 확정했지만 IFRS 기준에 따른 공시 로드맵을 확정한 회원국은 없다. 미국도 재계와 법조계, 정치권의 이견으로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정보 공시규칙 발표가 지연되고 있고, 설령 발표되더라도 2025년부터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 상황은 ESG 공시 의무화를 조기 추진하기에 더욱 취약하다.


첫째,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하에서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은 인도, 동남아, 중남미 등 주로 개도국에 배치돼 있다. IFRS 공시 기준대로라면 연결 자회사와 공급망 내 주요 협력 업체의 탄소배출량까지 공시해야 하는데 ESG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가 부족한 현지 개도국에서 당장 신뢰성이 담보된 연결데이터를 집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공시 의무화를 서두를 경우 자칫 부정확한 공시와 잦은 정정 공시로 투자자 혼란과 기업의 대외신인도 하락을 더 우려해야 할 판이다. 우리 정부가 주요 선진국만 볼 게 아니라 개도국 상황도 면밀하게 모니터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기업의 탄소배출 집계 및 공시 시스템 구축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글로벌 제조에 투입되는 화학물질과 에너지사용량, 폐기물 소각량 등 IFRS 기준에 부합하는 원천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집계하고 검증할 전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데 연결 자회사의 사업장마다 이를 구축하는 작업은 기술적 설계부터 파일럿 테스트를 거쳐 검증에 이르기까지 최소 3~4년이 걸리는 과제다. 수많은 데이터를 관리할 인력 확보와 전담 조직 신설, 검증 체계 마련, 교육·훈련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까지 고려하면 그나마도 부족하다.


셋째, 국내 인증시장 자체도 폭발적 수요를 충족하기에 턱없이 협소하다. 이는 공시 의무화 시행 초기 기업에 과도한 비용 부담을 유발할 게 자명하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자율공시와 달리 의무공시는 반드시 제3자 검증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후대응이 향후 사업에 미칠 영향을 공시함에 있어 기업 대부분은 스스로 재무적 리스크를 측정하기 어려워 전문 컨설팅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기업 현장에서는 벌써 컨설팅비용만 수억원에서 기업 규모에 따라서는 수백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탄소배출량 검증과 관련한 국내 전문업체 수는 13개, 검증 자격증 보유자는 약 200명 수준으로,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공시 의무화에 앞서 양질의 인증업체 양성이 요구된다.


애초 2025년으로 예정한 국내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번복할 경우 국가신인도가 염려된다지만 우리나라가 선제 도입해서 주요국 정책이 확정될 때마다 글로벌 추세에 맞게 고쳐나간다면 그 또한 정책 일관성에서 국제적 신뢰도는 훼손되는 것이다. ESG 공시는 할 거냐, 안 할 거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할 수 있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IFRS 공시 기준 채택 여부 등 국제적 흐름을 모니터링하는 가운데 국내 세부 공시 기준을 마련하고 시스템을 충분히 구축한 후 시작해도 늦지 않다.



출처: 헤럴드경제(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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