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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노동이사제, 우리 노사관계 현실에 맞지 않다

관리자 2021-06-07 조회수 340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한단 사람들은 걷는 모습이 특별히 멋있었다고 한다. 연나라의 한 젊은이가 한단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배우기 위해 한단까지 갔다. 그는 몇 달 동안 연습했지만 한단 사람들의 걷는 법을 배울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원래 걷는 법마저도 잊어버리게 됐다고 한다. ‘한단학보(邯鄲學步)’는 남의 흉내를 내려다가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까지 잃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다른 나라의 어떤 제도가 좋아 보인다고 해서 무턱대고 우리나라에 적용하려고 하면 한단학보의 우를 범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주장되고 있는 ‘노동이사제’가 그런 사례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국회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법안 3건이 발의돼 있다. 공공기관 및 공기업에 대해 노동조합, 근로자 대표 등이 추천한 자가 상임이사 또는 비상임이사가 돼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민간기업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도록 하는 ‘근로자대표제 및 경영참가 등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노동이사제가 과연 우리나라의 기업 운영 시스템에 조화될 수 있는 제도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이사제는 노사가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협력적 관계를 유지할 때에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립적·갈등적 노사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경영위기에 처해도 노동조합이 과감히 양보하고 경쟁력 회복을 위해 협력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경영 현황과 무관하게 무리한 임금인상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상황에서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노동이사가 참여한다면 이사회가 단체교섭의 연장선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의 경영목표·예산·운영계획 등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이사회 본연의 역할이 저해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는 대표적 나라인 독일은 우리나라와 같은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가 아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기반으로 한다. 기업의 자금 조달이 주식시장보다는 지역 금융권 및 지역 주민, 근로자를 통해 이뤄지는 비율이 높아 이들이 기업경영에 대해 깊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노동이사들은 경영이사회가 아닌 사후 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감독이사회에 참여한다. 그외에도 독일은 협력적 노사문화의 전통이 깊은 나라다. 중대한 경제고비마다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 유지·향상을 위해 노조가 자발적으로 기득권을 유보해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독일의 노사가 1990년대 이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업장협약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 직무순환, 추가 휴무, 임금삭감 등에 합의해온 사례는 유명하다.


우리 경제구조 및 노사관계 현실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나라의 노동이사제를 맹목적으로 장점만을 부각시키면서 도입한다면 노동이사제가 본래의 취지대로 기능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 기업들의 경영 시스템 근간을 무너뜨리게 될 수도 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전국 대학의 경영·경제학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문가들의 57.0%가 ‘노동이사제는 우리나라 경제시스템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것도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경제·사회적 제도는 다른 제도들과 유기적이고 조화롭게 작동될 때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서로 조화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부작용이 예상되는데도 신중한 검토나 논의도 없이 노동계의 일방적 요구사항을 담은 노동이사제가 입법화돼서는 안 된다.




출처: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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