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협 활동
국내 유일의 업종별 경제단체 공동협의기구
국내 유일의 업종별 경제단체 공동협의기구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손을 잡으며 성장한다. 아들이 다섯 살 무렵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가 떠오른다. 넘어질까 두려워 주저할 때 필요한 것은 주변의 도움이다. 뒤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손길이 있을 때 비로소 페달을 밟을 용기가 생긴다. 살며시 손을 놓았는데도 혼자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그 순간, 아이는 더 큰 세상을 향해 한 단계 성장했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걸음마 단계에서 더 큰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정마다 안전하게 디딜 수 있는 사다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순간 지원은 줄고 규제는 늘어난다. 중소기업 1만 곳 중 단 4곳만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중견기업 100곳 중 한두 곳만 대기업으로 나아간다. 중견기업이 되면 규제가 94개 늘고, 대기업이 되는 순간 329개가 추가된다. 여기에 고용세제 혜택은 절반 가까이 줄고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도 크게 축소된다. 성장의 보상보다 부담이 커지는 구조 속에서 기업의 열정은 쉽게 꺾일 수 있다.
지난주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힘을 모아 출범시킨 기업성장포럼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이 공유됐다. 논의의 초점은 ‘성장했으니 규제해야 한다’가 아니라 ‘성장했으니 더 지원해야 한다’는 방향 전환에 있었다. 특히 성장 단계에 맞춘 세제, 고용 인센티브, 연구개발 지원이 이어져야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우리 경제는 ‘기회는 적고 위험은 큰 구조’라는 진단과 함께 잠재성장률이 머지않아 0%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지금은 초격차 혁신 기업이 활짝 꽃필 수 있도록 제도의 벽을 낮추는 일이 필요하다. 초격차 혁신 기업은 단순히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을 넘어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존재다. 이들이 등장해야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매출과 자산 기준에 따른 일률적 규제로 기업은 움츠러들고, 일부는 회사를 쪼개거나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대사로 재임하던 시절 방문한 독일에서는 중소·중견기업들이 지역 연구소와 산업 현장에 어우러져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기술과 자본, 아이디어의 조화는 혁신의 사슬을 완성하는 원동력이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기술과 인력,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갖춘 유망 중소·중견기업이 경직된 차등 규제의 문턱에 걸려 성장을 주저하는 일이 반복된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 기업이 더 큰 도전에 나서도록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가 옆에서 잡아주는 손길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듯, 우리 사회도 기업이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도록 든든히 뒷받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미래 세대에게 더 넓은 무대를 열어주는 길이라 믿는다.
출처: 한국경제(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