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협 활동
국내 유일의 업종별 경제단체 공동협의기구
국내 유일의 업종별 경제단체 공동협의기구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한 기업을 세운다는 건, 누군가의 인생을 거는 일이다. 그 삶의 여정들은 산업의 길을 넓히고, 마침내 경제의 기반을 다진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성장해 왔다.
지난 3년, 수십 곳의 중견기업을 찾았다. 백발의 주름진 얼굴과 뭉툭한 손마디, 정직한 면면들이었다. 빛나는 청춘의 후계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차림새 따위 상관없는, 강인한 열정과 비전이 여실하다.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전기마저 시도 때도 없이 끊기던 낡은 공장을 회상하며, 실패는 곧 죽음이라는 각오였다고 그들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이윤이 남지 않아도 품질은 양보하지 않았다” “신용을 잃은 기업은 존재 가치가 없다” 어떤 이는 ‘기술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라 했고, 다른 이는 “어제와 같은 오늘은 성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창력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단언과, “사람은 경쟁력이자 운명”이라며 고졸 직원을 임원으로 키워낸 사연을 잊을 수 없다. 사훈을 팔아넘기지 않았고, 원칙을 지켰다. 경기가 어려워도 납기를 지켰고, 품질을 타협하지 않았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첫째, 현장을 지켰다. 모든 의사결정은 공정이 진행되는 사람과 기계 사이 어딘가에서 시작됐다. 올바른 판단은 현장에서만 가능했다. 둘째, 끝까지 버텼다. IMF 사태, 금융 위기, 팬데믹까지. 뚝심이 회사를 살렸다. “위기는 일상이지만, 언제나 결국 지나간다”는 믿음 혹은 소망을 굳게 붙들었다. 셋째, 기술로 승부했다. 하나의 공정이나 소재에 수십 년을 쏟아부어 끝내 글로벌 시장을 뚫어냈다. “오래된 시장도 잘하면 블루오션, 첨단산업도 경쟁력이 없으면 레드오션”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혁신을 추동했다. 넷째, 신뢰를 자산으로 여겼다. 거래처엔 납기일을, 직원에겐 월급날을 철저히 지켰다. 믿음과 신뢰, 인간관계의 핵심인 ‘정직’이라는 동화같은 신념은 힘이 셌다. 다섯째, 이익만 좇지 않았다. “성장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번 걸 사회가 써야 진짜 남는 장사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하지만, 대내외 여건은 녹록지 않다. 이례적인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 글로벌 교역의 오랜 규범은 형해화됐고, 상수가 돼 버린 자국 우선주의가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공정은커녕 경쟁의 구조 자체가 무너지고, 협의가 아닌 일방 통보가 질서 없는 통상의 기본값이 되어간다.
설상가상이랄지, 그럼에도 힘겹게 세계 시장으로 향하는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는 누적된 규제와 경직적인 제도는 요지부동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푸념이 비유가 아니다. 원칙이 흔들리면 정책의 정당성이 훼손되고, 정당성을 잃은 제도는 기업의 신뢰와 축적을 방해한다. 산업의 뿌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견기업은 어제의 중소기업이자 내일의 대기업이다. 산업화의 주역이자, 성장사다리의 중심으로서 중견기업이 이뤄낸 성취는 대한민국 경제의 오늘을 이끌었다. 매출과 수출, 고용의 핵심인 중견기업의 도약은 산업 생태계의 확장이자, 경제 체력의 강화다. 이들이 멈춰 서면 산업 전체의 엔진이 꺼진다.
백척간두,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현장을 존중하고, 원칙을 지키며, 축적된 경륜과 기업가정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제도·정책·사회적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다. 그게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대한민국 산업의 지속가능성이다.
출처 : 산업저널(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