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협 활동
국내 유일의 업종별 경제단체 공동협의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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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명 등으로 세계 산업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텔이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했고, 폭스바겐도 독일 내 3개 공장 폐쇄를 검토하고 나섰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부진한 실적을 내놓은 삼성전자에 대한 위기론이 부각되는 등 한국 경제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산업도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 위기의 원인으로는 반도체 시장 예측 실패, 기술력 부재, 관료화한 조직문화, 인재 확보 어려움 등이 거론된다. 그 가운데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쟁국 대비 경직적인 근로시간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핵심 분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국내 기업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해외 빅테크와 경쟁 중이고 첨단 분야 인재는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다. 주요 선진국은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면제하는 제도를 통해 부족한 인적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으나, 한국은 핵심 분야 인재 활용에 근로시간 규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은 근로시간 제한 자체가 없고, 일본은 연장근로를 월 45시간, 연 360시간으로 제한하지만 업무량 폭증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노사 합의로 월 100시간, 연 720시간까지 가능하게 했다. 영국은 근로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 법정 근로시간 한도를 초과해 근무할 수 있다.
경직적인 근로시간 규제는 중소기업에서 더 큰 문제다. 모든 업종, 업무를 1주 52시간 내에 마무리할 수 있다면 굳이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감이 1년 내내 일정하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수주하면 반드시 납기일을 지켜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심각한 인력난에 처한 상황에서 일이 몰릴 때 가능한 인원으로 연장근로를 더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근로 국가이며 근로시간 제도를 유연화하면 장시간 근로를 더욱 가속할 것이라는 오해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장시간 근로 국가로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1인당 연간 평균 실근로시간은 2008년 2200시간대에서 2023년 기준 1800시간대로 줄어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42시간)에 근접했다. 풀타임 임금근로자를 비교했을 때 2022년 기준 42.0시간으로 OECD 평균인 40.7시간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통계상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5위권이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자영업자 비중이 높고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작은 탓에 근로시간이 비교적 길게 나타나는 측면을 감안해야 한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주 52시간이라는 큰 틀은 유지하면서 필요한 시기에 일을 좀 더 할 수 있도록 해 급변하는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근로자도 적절한 보상이 있다면 필요시 일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현재는 연장근로가 1주 12시간 내에서만 가능하지만, 노사가 합의한다면 연장근로를 1주가 아니라 월 단위 이상으로 변경토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직 등 기업 핵심 인력은 근로시간만으로 일의 성과를 평가하기 어렵다. 일정 소득 이상의 전문직 또는 특정 업무 수행자에게는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제외하는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와 같은 것을 도입해 개인의 능력과 기업 경쟁력을 높일 필요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 기업이 언제 위기에 처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다. 주 52시간 근로제만이라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 출처 :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