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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인협회] 자사주 소각, 정교한 설계 필요하다

관리자 2025-12-19 조회수 106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


최근 국회에서 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강제화하는 상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취지는 주식 가치를 높이고, 이익잉여금으로 매입한 자사주를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활용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짚어 볼 것이 있다. 과연 자사주 소각은 주식 가치를 높이는 것일까. 주요 투자지표 중 하나인 ‘주당순이익’(순이익/주식 수)에서 자사주 소각은 분모를 줄여 지표가 단기적으로 개선된다. 하지만 자사주의 다양한 재무적 활용이 어려워져 인수·합병(M&A), 투자 차질로 기업 이익을 감소시킬 개연성이 커진다. 즉 자사주 소각은 주식 가치를 높이는 근본적 대책이 되기 어렵다. 자사주를 활용한 대주주 지배력 강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기업사냥꾼에 대한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나라에서 자사주를 활용한 우호지분 확보는 자위권 차원에서 유일한 수단이다.


그럼에도 자사주 소각 강제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면 기업 경영과 법적 안정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는 최소한의 보완 조치는 마련돼야 한다. 우선 합병이나 지주회사 전환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매입한 ‘비자발적 자사주’는 소각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 상법상 ‘특정 목적에 의한 자사주’로 분류되는 이 주식은 경영 효율화 과정에서 발생한 산물일 뿐이다. 문제는 이를 소각하려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 자본금을 줄이는 ‘감자’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이다. 감자는 주주들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주총에서 특별결의 요건인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된다면 회사는 소각 의무를 이행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설사 특별결의를 통과해도 산 넘어 산이다. 감자 절차는 채권자 보호 절차가 수반된다. 최소 1개월 이상의 이의신청 기간을 두는데, 멀쩡한 회사라도 감자 공고가 나가면 채권자는 이를 재무적 위기 신호로 오인할 수 있다. 만약 채권자들이 이를 이유로 대출금 조기 상환을 집단적으로 요구하면 건실한 기업도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통신, 전력 등 외국인 지분 규제가 적용되는 국가 기간산업도 자사주 소각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 이들 산업은 국가안보와 공공성을 이유로 외국인 지분율이 기간통신 49%, 전력산업 40% 등으로 제한된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상승해 외국인 지분율이 법정 보유 한도를 초과할 수도 있다.


특히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에 대해서는 보유·처분의 예외적 사유와 소각 기한을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 상장사들이 보유한 자사주는 올해 상반기 기준 82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도 상장사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169조6000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를 짧은 시간에 모두 소각하라는 것은 기업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소한 주총 승인이 있을 경우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 발행은 허용할 필요가 있다. 교환사채는 인수자가 낮은 이자율을 수용하는 대가로 주가 상승에 대한 옵션 가치를 취득하므로 기업은 일반 채권보다 낮은 금리로 채권 발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경기 불황으로 재무 상황이 좋지 않고, 급속한 산업 전환 국면인 지금 같은 시기에 꼭 필요한 자금 조달 수단이다.


자본시장 선진화와 주주 가치 제고는 우리 경제가 반드시 가야 할 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자사주의 매입 수요를 줄이고 수익성을 악화시켜 주주 가치에 역행할 우려가 있다. ‘교각살우’라는 말처럼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정책의 디테일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출처: 국민일보(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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